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성 로마 제국 황제관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황제관은 [[오토 1세]]의 재위기인 962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. 제관에 대한 첫 문헌 상의 기록은 12세기의 것일 정도로 굉장히 역사가 오래된 물건이다. [[로마왕]]에 즉위할 때에 대부분의 황제들이 이 관을 쓰고 대관식에 참석했으며, 그 상징성 덕분에 [[레갈리아|황제의 상징물들]][* 십자가, 검, 오브 등이 있었다.] 중에서 가장 가치가 높다고 여겨졌다. 신성 로마 황제들은 1806년까지 1,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 왕관을 상징으로 사용했고, 신성 로마 제국이 망하고 들어선 [[독일 제국]]은 자신들이 신성 로마 제국의 후계국임을 표방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 제관의 모습을 본따서 독일 [[카이저]]의 왕관을 디자인하기도 했다.[* 정작 [[호엔촐레른 가문]]의 독일 황제들은 대관식을 치르지 않았을 뿐더러 [[독일 제국]]이 멸망할때까지 나무로 만든 목업을 제외하면 왕관은 제작되지 않았다.] 물론 황제관이 황제의 상징 그자체이기는 했지만 워낙 무겁고 장식성이 컸던 탓에 황제들이 매일 이 관을 쓰고 다니는 일은 없었다. 황제들이 이 관을 실제로 썼던 것은 [[대관식]]이나 정말 중요한 행사 한정이었으며, 그 외의 경우에는 잘 착용하지 않았다. 때문에 황제들은 이 관을 [[프라하]], [[뉘른베르크]] 등에 소재한 황실 수장고[* 프라하에는 아예 이 관을 보관하기 위해서 수장고용 성 하나를 짓기도 했다.] 등에 넣어두었다가 대관식 때에만 [[아헨]]이나 [[프랑크푸르트]] 등으로 가져와서 썼다. 1796년에 [[프랑스 왕국]]에서 [[프랑스 혁명]]이 일어나 유럽 각국 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소실을 우려하여 [[레겐스부르크]]로 가지고 왔고, 1800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[[빈(오스트리아)|빈]]으로 또 가지고 왔다. 1806년에 신성 로마 제국이 망한 이후에도 황제관은 여전히 빈에 남았고, 1938년에 [[안슐루스]]가 일어나기 전까지 쭉 오스트리아에 보관되어 있었다. 그러나 안슐루스로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[[나치 독일]]은 황제관을 독일의 [[뉘른베르크]]로 가져가버렸고, [[제2차 세계대전]] 도중에는 공습을 우려하여 일부러 뉘른베르크 황제 거성 지하 깊숙한 곳의 금고에 넣어 보관했다. 나치 독일이 1945년에 패망하면서 [[미군]]이 그해 8월에 황제관을 금고에서 꺼내 1946년 1월에 [[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]]의 국립은행 건물로 가져왔다. 여담으로 1945년 미군이 장난스럽게 쓰고 있는 사진도 있다. [[https://www.reddit.com/r/HistoryPorn/comments/mjxbw9/american_soldier_wearing_the_crown_of_the_holy/|사진]] 그 이래 지금까지 오스트리아 빈의 호프부르크에서 계속 전시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